• 여행지;경주월드/캘리포니아비치
    대한민국 유일! 드라이파크와 워터파크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곳, 캘리포니아비치는 천년고도 경주 보문단지에 위치한 남부권 최강의 워터파크로 유명하다. 세계적인 테마파크 전문 설계회사인 캐나다 Forrec사에 컨셉트 및 상세설계를 의뢰하여 진행해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했다. 매년 시크릿, 쥬얼리, EXID 등 인기 모델을 섭외하여 공연을 진행해 물놀이와 공연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것도 캘리포니아비치에 가야 하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다. 또 매년 스릴 강도가 높은 놀이기구를 도입해 젊은 층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예로 국내 최초, 아시아 최대규모의 물 폭풍 ‘섬머린 스플래쉬’, 캘리포니아비치의 대표 아이콘 국내 최대규모의 ‘엑스’, 캡슐 모양의 스탠딩 슬라이드 ‘더블 익스트림’, 급 하강과 급 회전이 동시에! 다이나믹 튜브 슬라이드 ‘와이프 아웃’, 320m길이의 초 강력 유수풀 ‘웨이브 캐년’을 들 수 있다. 이외에도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대형 파도 풀 ‘산타모니카 비치’, 유아 전용풀장 ‘페블비치’, 천연 온천스파와 지압 마사지를 함께 즐길 수 있는 ‘팜스프링’과 원두막 모양의 ‘방갈로’도 준비되어 있어 가족끼리 여름휴가 시 함께 찾아도 좋다.

    자료출처 : http://korean.visitkorea.or.kr

    승용차로 5분 거리 위치

  • 여행지;신라밀레니엄파크
    비슷비슷한 라이드 시설과 이벤트 공연을 즐기는 놀이공원식 테마파크에서 벗어나 신라라는 확실한 테마를 중심으로 운영요원들이 신라시대 의상을 입고 활동하고 최첨단 기술을 통한 초대형 야외공연, 대가들의 고증이 끝난 신라가옥 체험, 문예마을 체험 등을 통해 1,200년전 신라를 경험한다. 자료출처 : http://korean.visitkorea.or.kr

    승용차로 7분 거리 위치

  • 여행지;보문관광단지
    보문호를 중심으로 하는 보문관광단지는 주변지역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더불어 고급호텔과 콘도, 온천, 골프장, 야외공연장, 놀이시설 등 각종 문화레저시설을 두루 갖춘 국제적인 관광단지이다. 1971년, 경주종합개발계획사업의 일환으로 종합휴양지 조성을 목적으로 개발되어, 경주지역의 역사적 특성을 살려 고대와 현대가 잘 어우러지도록 조성하였으며 전 지역이 온천지구 및 관광특구로 지정되어 있다. 고풍스럽고 은은한 맛을 풍기며 사계절 관광객이 이용할 수 있는 온천형 관광지로 우아하고 정취 있는 전통적 이미지가 창출될 수 있는 내륙형 종합관광휴양단지이며, 한국관광산업의 1번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자료출처 : http://guide.gyeongju.go.kr/deploy/

    승용차로 5분 거리 위치

  • 여행지;테디베어박물관
    경주보문단지 관광단지 현대호텔 옆 드림센터 입구에 총 4,600여㎡ 전면적이 박물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기존의 관광시설과 차별화되어 경주의 특색을 고려한 전시컨셉과 소재를 통해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 흥미진진한 탐험을 즐길 수 있다. 성인관람객에게는 새로운 태마 관광지로써 아동관람객에게는 국내 최초로 단순한 공룡모형이 아닌 테디베어와 공룡, 해저탐험, 신라시대여행 등의 전시, 연출과 3D 영화를 통해 역사와 과학을 한 번에 보고 경험할 수 있는 즐겁고 교육적이며 풍성하고 유익한 볼거리이다.

    자료출처 : http://korean.visitkorea.or.kr

    승용차로 5분 거리 위치

  • 여행지;경주엑스포
    경주 보문단지에 있는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은 '문화'를 주제로 한 테마공원이다. 이곳에서 열리는 경주세계문화엑스포는 우리나라와 세계 각국의 문화를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으며, 엑스포가 열리는 기간이 아닐 때에는 공원에서 전시, 영상, 공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상시 즐길 수 있다. 공원 입구에 들어서면 황룡사9층목탑을 음각화한 경주타워가 어 서 있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의 상징 건축물로, 높이는 황룡사 실제크기와 같은 82m이다. 4천5백여 점에 이르는 전시물과 체험을 할 수 있는 세계화석전시장, 3D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상영하는 첨성대 영상관 등은 온 가족이 함께 즐기기에 좋고, 서라벌의 숲을 재현한 신라 왕경숲과 더불어 시간의 정원, 아사달 조각공원에서 휴식과 여유를 얻을 수 있다.

    자료출처 : http://korean.visitkorea.or.kr

    승용차로 5분 거리 위치

  • 여행지;불국사
    『구름을 마시고 토한다』는 토함산(745m)의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불국사와 석굴암은 찬란한 신라 불교문화의 핵심으로 1,440년 전 신라 법흥왕 22년에 그 어머니 뜻에 따라 나라의 안정과 백성의 평안을 위하여 세워졌으며, 그 후 신라 경덕왕 (742-764)때 재상 김대성이 다시 지어 절의 면모을 새롭게 하였다. 그 뒤 임진왜란으로 건물은 물론 값진 보물들이 거의 불에 타거나 약탈되었다. 1920년 이전에는 일부 건물과 탑만이 퇴락한 채 남아 있었으나, 지속적인 원형복구 및 보수로 국보 7점을 간직한 오늘날 대사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불국사에서 산등성이를 타고 약 3km (포장도로 석굴로는 9km)정도 올라가면 동양 제일의 걸작으로 알려진 여래좌상의 본존불이 동해를 마주 바라보고 있는 유명한 석굴암이 있다. 불국사.석굴암은 1995년 12월 6일 해인사 장경판전과 종묘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공식 등재되어 국제적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자료출처 : http://korean.visitkorea.or.kr

    승용차로 30분 거리 위치

  • 여행지;석굴암
    석굴암은 경주시 토함산 정상 가까이에 자리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석굴 사원이다. 화강암을 이용해 만든 인공석굴로, 신라 불교예술의 전성기에 이룩한 걸작품으로 손꼽힌다. 통일신라 혜공왕 10년에 완성된 석굴암은 건립 당시에는 ‘석불사’라 불렀다. 신라의 귀족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석굴암은 사실적인 표현과 원숙한 조각 기법이 돋보이며, 내부공간에 본존불을 중심으로 보살상, 제자상 등 총 38구의 불상이 조각되어 있다. 석굴암 석굴은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종합적인 결정체이다. 1천 년의 역사를 지닌 석굴암의 자연 친화적인 온, 습도 조절 비결을 현대 과학기술로 아직 풀지 못할 정도로 신비롭다. 현재 항온, 항습의 문제가 우려되어 1976년부터 유리벽을 통한 외부관람만 가능하다. 석굴암에 가려면 주차장에 차를 두고, 고즈넉한 산길을 따라 20여분간 걸어 올라가야 한다. 수풀이 우거진 주변 풍경을 감상하며 걷기에 좋다. 특히 석굴암 해돋이는 장관으로 소문이 나 있다.

    자료출처 : http://korean.visitkorea.or.kr

    승용차로 30분 거리 위치

  • 여행지;경주민속공에촌
    소중히 간직하여야 할 선조들의 전통 공예 기술과 멋을 계승하고자 자리잡은 공예인 마을로, 전통 기와집과 초가집 40여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곳에는 금속, 도자, 목공, 보석, 한복, 문화재모조, 석공예, 정각 등의 생산업체가 입주하고 있다. 여러 장인들의 작품 활동 및 제작 과정을 직접 살펴볼 수 있으며, 일부 공방에서는 직접 공예품을 만들어 볼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또한 저렴한 가격에 생산품을 직접 구매할 수도 있다. 보문단지와 불국사를 연계하는 관광코스로 한옥과 어우러진 마을의 풍경이 아름다워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자료출처 : http://korean.visitkorea.or.kr

    승용차로 10분 거리 위치

  • 여행지;동리목월문학관
    일제강점기를 문학의 감동으로 달구었던, 경주를 대표하는 두 명의 작가가 있다. 바로 무녀도의 작가 김동리와 청록파 시인이자 나그네라는 시로 유명한 시인 박목월이다. 두 문인은 동시대를 살아가며 함께 정신적으로도 많은 교감과 우정을 나누었고, 이러한 교류를 통해 일제에 침묵하며 암묵적인 저항을 했던 당시의 외로움과 고통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수많은 지식인들이 친일파가 되었던 일제강점기의 문단현실에서 그들의 존재는 빛과 같은 희망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동리. 목월문학관에는 그들의 문학작품을 즐겁게 향유할 수 있을 만큼의 많은 자료들이 전시되어있으며, 어린이들이 김동리 선생의 어려운 문학작품에 보다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영상자료로 그의 소설을 표현하고 제공하여 눈길을 끈다.

    자료출처 : http://korean.visitkorea.or.kr

    승용차로 30분 거리 위치

  • 여행지;러브캐슬
    성을 주제로한 러브 테마 박물관입니다. 2만여명이 넘는 부지로 여러 나라의 성과 문화에 대하여 알 수 있는 러브캐슬입니다. 솔직함을 통한 유쾌함과 즐거움.. 지구상의 사람수만큼이나 다양한 사람과 성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자료출처 : http://www.lovecastle19.kr/

    승용차로 10분 거리 위치

  • 여행지;블루원 워터파크
    블루원 워터파크는 국내최고 2.6m 높이의 스톰웨이브(파도풀)의 웨이브존, 266m의 짜릿한 래프팅 코스의 토렌트존과 야외 스파 및 실내 스파와 슬라이드의 4계절 내내 즐길 수 있는 포시즌존이 있어 가족은 물론 다양한 연령층이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는 국내 물놀이 시설이다. 그저 슬라이드를 타는 것만이 아닌 공중을 날 수 있는 플라잉폭스, 캐논볼의 신규 어트랙션의 설치로 더 신나게 즐길 수 있다.

    자료출처 : http://korean.visitkorea.or.kr

    승용차로 5분 거리 위치

  • 여행지;경주국립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은 신라 천년의 문화를 간직한 보고로서 많은 사랑과 깊은 관심과 성원을 받아왔다. 최근 박물관은 미술관 개관, 고고관 및 월지관 그리고 특별전시관을 새롭게 단장하여, 전시환경을 일신하였다. 지금까지 전시실 개선과 관람객 편의시설 등 하드웨어의 확충에 치중하였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박물관 운영 및 평생학습에 관련된 소프트웨어의 개발에 더욱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변화와 혁신의 시대를 맞이하여 전문적인 운영방안이 필요하며, 박물관의 정체성을 구현하기 위한 중장기 발전방안을 수립해야 할 시기이다. 신라문화의 보존·전시·조사·연구를 수행하는 핵심 문화센터로서 앞으로 다양한 기획전시와 국제교류사업 및 사회교육프로그램을 추진하여 동아시아의 중추적인 문화 복합기관으로 도약하고자 한다.

    자료출처 : http://korean.visitkorea.or.kr

    승용차로 15분 거리 위치

  • 여행지;안압지
    경주 동궁과 월지는 신라 왕궁의 별궁터이다. 다른 부속건물들과 함께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면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곳에서 연회를 베풀었다고 한다. 신라 경순왕이 견훤의 침입을 받은 뒤, 931년에 고려 태조 왕건을 초청하여 위급한 상황을 호소하며 잔치를 베풀었던 곳이기도 하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문무왕 14년(674)에 큰 연못을 파고 못 가운데에 3개의 섬과 못의 북동쪽으로 12봉우리의 산을 만들었으며, 여기에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고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전해진다. 고려시대의 『삼국사기』에는 임해전에 대한 기록만 나오고 안압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으며, 이 후 신라가 멸망하고 고려와 조선에 이르러 이곳이 폐허가 되자, 시인 묵객들이 연못을 보며 '화려했던 궁궐은 간데없고 기러기와 오리만 날아든다.'는 쓸쓸한 시 구절을 읊조리며, 이 곳을 기러기 '안'자와 오리'압'자를 써서 '안압지'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후 1980년대 '월지'라는 글자가 새겨진 토기 파편이 발굴되며, 이 곳이 본래 '달이 비치는 연못'이라는 뜻의 '월지'라고 불렸다는 사실이 확인 되어 '안압지'라는 이름은 '동궁과 월지'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일제강점기에 철도가 지나가는 등 많은 훼손을 입었던 임해전 터의 못 주변에는 1975년 준설을 겸한 발굴조사에서 회랑지를 비롯해서 크고 작은 건물터 26곳이 확인되었다. 그 중 1980년에 임해전으로 추정되는 곳을 포함하여, 신라 건물터로 보이는 3곳과 월지를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에서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는데, 그 중 보상화(寶相華) 무늬가 새겨진 벽돌에는 '조로 2년(調露 二年, 680)'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임해전이 문무왕때 만들어진 것임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대접이나 접시도 많이 나왔는데, 이것은 신라무덤에서 출토되는 것과는 달리 실제 생활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임해전은 별궁에 속해 있던 건물이지만 그 비중이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이며, 월지는 신라 원지(苑池)를 대표하는 유적으로서 연못 가장자리에 굴곡을 주어 어느곳에서 바라보아도 못 전체가 한눈에 들어올 수 없게 만들었다. 이는 좁은 연못을 넓은 바다처럼 느낄 수 있도록 고안한 것으로 신라인들의 예지가 돋보인다.

    자료출처 : http://korean.visitkorea.or.kr

    승용차로 15분 거리 위치

  • 여행지;첨성대
    성대는 화강암을 사용한 석조 건축물로, 기단 위에 술병 모양의 원통부를 올리고, 맨 위에 정(井)자 돌을 2단으로 쌓아 동서남북의 방위를 가리키는 기준으로 삼았다. 높이가 약 9m로, 현존하는 고려와 조선의 천문대 높이가 2~4m 정도인 것과 비교하면 규모가 훨씬 크다. 음력으로 1년을 의미하는 362개의 돌을 사용했고, 기본 별자리 수와 같은 28층으로 단을 쌓았다. 창문을 기준으로 아래, 위를 각각 12단으로 쌓았는데 이는 24절기를 의미한다. 첨성대가 1천4백년 가까운 세월을 견뎌온 것은 창문 아래 안쪽을 막돌로 채우고, 기초 공사를 탄탄히 했기 때문이다. 현재 동북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으나 거의 원형형태를 간직하고 있으며, 해가 진 후 조명에 비친 첨성대의 고풍스럽고 우아한 자태도 볼 만하다.

    자료출처 : http://korean.visitkorea.or.kr

    승용차로 15분 거리 위치

  • 여행지;오르골소리박물관
    경주오르골소리박물관은 국내 최초로 오르골을 테마로 한 박물관으로써 근대 소리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귀로 경청하며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체험 박물관이다. 또한, 오르골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유일하게 본 박물관에는 100여 년 전의 세계 최대급 댄스 오르간을 소장하고 있으며, 기타 축음기와 자동으로 연주되는 피아노 등이 전시되어 있어 100여 년 전의 소리 원음과 재생음을 비교해 가며 경험할 수 있는 박물관이다.

    자료출처 : http://korean.visitkorea.or.kr

    승용차로 20분 거리 위치

  • 여행지;선덕여왕릉
    신라 최초의 여왕인 제27대 선덕여왕이 모셔진 경주 선덕여왕릉은 646년경 조성되었다. 왕릉의 위치는 사천왕사지 인근 야트막한 낭산 정상 부근이고, 오르는 길에 소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선덕여왕은 김유신, 김춘추와 더불어 삼국통일의 기초를 닦고, 첨성대, 분황사, 황룡사 9층탑 등을 세워 신라 불교 건축의 금자탑을 이루기도 했다. 왕릉은 높이 6.8m, 지름 23.6m의 크기이고, 둥글게 흙을 쌓은 봉토(封土) 무덤이다. 자연석을 이용하여 2∼3단의 둘레돌을 쌓았고, 십이지상 조각이 있을 자리에 큰 돌들이 세워져 있다. 주위에 소나무들이 호위병처럼 능을 둘러 서 있다. 선덕여왕릉은 1969년 8월 사적 제182호로 지정되었으며, 주변에 신문왕릉, 효공왕릉, 신무왕릉, 효소왕릉 등 다수의 왕릉이 있다.

    자료출처 : http://korean.visitkorea.or.kr

    승용차로 20분 거리 위치

  • 여행지;남산
    남산은 경주시의 남쪽에 솟은 산으로 신라인들의 신앙의 대상이 되어 왔다. 금오봉(468m)과 고위봉(494m)의 두 봉우리에서 흘러내리는 40여 개의 계곡과 산줄기들로 이루어진 남산은 남북 8km, 동서 4km로 남북으로 길게 뻗어내린 타원형이면서 약간 남쪽으로 치우쳐 정상을 이룬 직삼각형 모습을 취하고 있다. 100여 곳의 절터, 80여 구의 석불, 60여 기의 석탑이 산재해 있는 남산은 노천박물관이다. 남산에는 40여 개의 골짜기가 있으며, 신라 태동의 성지 서남산, 미륵골·탑골·부처골 등의 수많은 돌속에 묻힌 부처가 있는 동남산으로 구분된다.
    남산 서쪽 기슭에 있는 나정은 신라의 첫임금인 박혁거세의 탄생신화가 깃든 곳이며 양산재는 신라 건국 이전 서라벌에 있었던 6촌의 시조를 모신 사당이다. 포석정은 신라 천년의 막을 내린 비극이 서린 곳이다. 동남산에는 한국적 아름다움과 자비가 가득한 보리사 석불좌상, 9m 높이의 사면 바위에 탑과 불상 등을 새긴 불무사 부처바위, 바위에 아치형 감실을 파고 앉은 부처골 감실석불좌상이 있다. 남산에는 미륵골(보리사) 석불좌상, 용장사터 삼층석탑, 국보 칠불암 마애불상군을 비롯한 11개의 보물, 포석정터, 나정과 삼릉을 비롯한 12개의 사적, 삼릉골 마애관음보살상, 입골석불, 약수골 마애입상을 비롯한 9개의 지방 유형문화재, 1개의 중요 민속자료가 있다.
    유적 뿐만 아니라 남산은 자연경관도 뛰어나다. 변화무쌍한 많은 계곡이 있고 기암괴석들이 만물상을 이루며, 등산객의 발길만큼이나 수많은 등산로가 있다. 엄지손가락을 곧추 세워 남산을 일등으로 꼽는 사람들은 "남산에 오르지 않고서는 경주를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 고 한다. 곧, 자연의 아름다움에다 신라의 오랜 역사, 신라인의 미의식과 종교의식이 예술로서 승화된 곳이 바로 남산인 것이다.
    자료출처 : http://korean.visitkorea.or.kr

    승용차로 25분 거리 위치

  • 여행지;통일전
    통일전은 삼국통일의 정신을 계승하고, 다가올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국민의 전당이다. 경내에는 태종무열왕, 문무대왕, 김유신 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으며, 통일의 격전을 생생히 보여주는 기록화가 긴 회랑을 따라 전시되고 있다. 통일전은 호국영령의 뜻을 기리자는 뜻으로 건립된 만큼 초중등학생들의 이념 교육장 형태로 이용되고 있으며 수학여행의 필수코스인 듯 하다. 특별히 볼 것은 없으나 삼국통일 당시의 전투장면 등이 여러 개의 액자에 그려져 있는 것이 인상적이며, 남산 답사 도중 잠시 호국영령을 참배하고 다리쉼을 원하면 너른 잔디밭에서 쉬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자료출처 : http://korean.visitkorea.or.kr

    승용차로 25분 거리 위치

  • 여행지;포석정
    포석정은 왕이 술을 들면서 즐길 수 있도록 마련된 별궁의 하나였으나, 건물은 없어지고 마른 전복(포어:鮑魚)모양의 석구만 남아 있으며,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성 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규모는 폭이 약 35㎝, 깊이 평균 26㎝, 전체 길이가 약 10m이다. 포석정은 중국 고대 강가에서 초혼제를 지내고 악귀를 쫓는 행사의 하나인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에서 유래하였다. 353년 중국의 왕희지가 쓴 난정서문(蘭亭敍文)에 보면 맑은 시냇물을 아홉 구비로 돌아 흐르게 하여 흐르는 물속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짓게 하되 술잔이 아홉 구비를 다 지날 때까지 시를 짓지 못하면 벌술 3잔을 마시게 하였다. 이 때 술잔의 모양은 뿔모양이다. 유상곡수를 즐기는 주위는 높고 험한 산이 있고, 숲과 대나무숲이 있으며 맑은 시내가 옆으로 흘러갔다. 신라에서도 험한 남산 봉우리을 뒤로 하고 죽림과 송림이 울창하고 맑은 시내가 흐르는 계곡에 포석정을 만들었던 것이다. 원래는 남산계곡에서 흘러 들어오는 입구에 거북 모양의 큰 돌이 있었고, 그 입에서 물이 나오도록 만들어졌다고 하나 지금은 없어져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게 되었고, 삼국유사에 헌강왕이 이곳에 와서 남산 신의 춤을 따라해 어무상심무(御舞祥審舞)라는 신라춤을 만들었다 한다. 이곳은 인간의 마음을 수양하고 화랑이 정신을 도야하며 시문을 짓고 속세를 떠나 유정을 느끼던 아름다운 장소였다. 927년 신라 경애왕이 이곳에서 잔치를 베풀며 놀고 있다가 후백제 견훤의 습격을 받아 붙잡히게 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신라 천년 역사의 치욕이 담긴 장소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포석정이 단순한 놀이터가 아니라 왕과 귀족들의 중대한 회의 장소 또는, 제사 장소이기도 했다는 학설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사적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자료출처 : http://korean.visitkorea.or.kr

    승용차로 25분 거리 위치

  • 여행지;문무대왕릉
    봉길리 앞바다에 육지로부터 200m쯤 떨어진 바위섬이 하나 있는데, 이곳이 바로 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 제 30대 문무왕 (661-681)의 수중릉이다. 둘레 200m의 바위섬에 동서와 남북으로 십자 모양의 물길을 깎은 다음, 가운데 작은 못처럼 파여서 항을 이루고 있으며, 이곳에 깊이 3.6m, 폭 2.85m, 두께 0.9m의 큰돌을 물속 2m 깊이에 놓아 그 밑에 유골을 모신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단, 화장을 해서 재를 뿌렸느냐 유골을 직접 모셔 놓았느냐에 대해서는 아직 학자들간에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 큰 돌을 대왕암이라 하며 사적 제158호로 지정되어 있다.

    자료출처 : http://korean.visitkorea.or.kr

    승용차로 50분 거리 위치

  • 여행지;경주감은사지3층석탑
    감은사(感恩寺)는 신라 제30대 문무대왕이 삼국통일의 대업을 성취하고 난 후, 부처님의 힘으로 왜구의 침입을 막고자 이곳에 절을 세우다 완성하지 못하고 돌아가자 아들인 신문왕이 그 뜻을 따라서 즉위한 지 2년 되던 해인 682년에 완성한 신라시대의 사찰이었다. 문무대왕은 죽기 전 내가 죽으면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하니 화장하여 동해에 장사지낼 것을 유언하였는데, 그 뜻을 받들어 장사한 곳이 바로 대왕암이며 부왕의 은혜에 감사하여 사찰을 완성하고 이름을 감은사라 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현재의 모습은 1979년부터 2년에 걸쳐 전면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얻어진 자료를 통해 창건 당시의 건물 기초대로 노출 정비한 것이며, 아울러 금당의 지하에는 바다용이 된 문무대왕의 휴식을 위한 상징적인 공간을 마련한 특수 구조와 동쪽으로 통로를 만들었다고 하는 흔적도 밝혀 놓은 것이다. 우뚝 솟은 두 삼층석탑은 만들어진 연대가 확실한 통일신라 초기의 석탑으로서 수십 개의 부분으로 나누어 만들어 조립식으로 세운 것으로 전체 높이 13.4m에 이르는 신라 삼층석탑 중 최대의 것이다.

    자료출처 : http://korean.visitkorea.or.kr

    승용차로 50분 거리 위치